자료명 | 윤봉길의 이력서 및 유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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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번호 | A-0002 |
생산자 | 윤봉길 |
발신자 | |
수신자 | |
생산연도 | 일제강점기 |
수량 | 1건 2점 |
유형 | 문서류 |
규격(가로*세로*두께)(cm) | 수첩16.4×20.0, 내부의 이동녕 그림17.4×27 |
재질 | 지류 |
언어 | 국한문 |
디지털화여부 | 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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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설명 |
윤의사가 남긴 유품들 가운데 하나로 1932년 한인애국단에 입단할 때 손으로 직접 쓴 이력서와 유서이다. 유서는 펜글씨로 씌여있고, 크기는 가로 16.5㎝, 세로 29㎝이며, 1책 17매이다. 자서약력은 윤의사가 'School Exercise Book'이라 표제된 중국제 노트의 표지에 '윤봉길 이력'이라 한자로 쓰고 노트 첫 면에 '(한인)애국단원'으로 자신의 소속을 밝히고 본적(충남 예산군 덕산면 시량리 139번지)과 본관(파평)과 부모(부 윤황, 모 김원상)의 성명을 쓰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에 따르면 윤의사는 1908년(무신년 음력 5월 23일)에 태어나 7세에 사숙에 취학하였고, 재주가 뛰어나 재동(才童)으로 불렸으며, 성질이 남다르고 굳세고 조급하여 동배(同輩)들과 다툼에 패한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접장한테 매를 맞았는데도 울지 않고 오히려 욕을 하여 '살가지'라는 별호까지 얻었다고 한다. 15세 때까지 열심히 공부하여 사율일수(四律一首)는 무난하게 지을 정도로 시작(詩作)이 능숙해졌다고도 했다. |